민족의 영산이자 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지리산의 한자락, 뱀사골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지리산전적비와 지리산충혼탑을 찾아보았다.
지리산 뱀사골로 향하는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는 1948년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에 출몰한 공비토벌작전시 산화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79년 교통부에서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후세에게 반공교육의 교육장으로 추모코자 건립한 지리산지구 전적비와 2007년 재건립한 지리산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지리산지구 전적비>
<지리산충혼탑>
지리산충혼탑은 민족의 가슴에 붉은 상처를 안겨준 민족상잔의 비극 625사변때에 전쟁이 격량에 휩싸여 지리산에서 빨치산과 괴뢰군잔당을 토벌하다가 목숨을 잃은 민경군 7,283명의 영령을 모신 곳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충혼 휘호와 함께 충혼비 뒤에 새겨진 헌시>
처음에는 1955년 5월 15일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휘호 충혼(忠魂)릏 새긴 이 충혼탑을 광한루원에 세웠으나 1987년 6월 6일 영령들이 산화하신 이 곳 뱀사골 현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탑이 건립된지 어언 50년이 지나 세월의 비와 바람에 돌은 마모되고 휘호는 훼손되어 자칫 그 정신마저 사라질 형편에 이르러 남원시와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의 주선으로 터를 확장하고 충혼의 정신을 다시 새겨 충혼탑을 세웠다.
여순반란사건이후 국군의 진압으로 지리산으로 들어가 정규균형태의 조직을 갖춘 빨치산은 이후 남부군이라는 대규모 군사조직으로 개편해 최대 2만명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지리산 일대에 출몰하여 일대의 주민들은 그들의 방화,살인,납치,약탈의 만헹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만행과 유혈참극은 1963년 11월 정순덕이 체포되어 빨치산이 완전히 토벌된 10년동안이나 지속되었었다.
이 역사의 아픔이 살아 숨쉬고 있는 지리산충혼탑에는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을 토벌하다가 희생된 민군경 7,238명의 이름이 또박또박 새겨져 있다.
그들은 오직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한목숨을 바치며 빨치산과 싸웠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안녕과 평화는 이랗게 수천 또는 그이상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희생을 뜨겁게 감사하고 기억하며 그들이 염원했던 통일조국의 내일을 기약하는 계기로 삼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울긋불긋 단풍이 불들어가는 이 아름다운 지리산도 이곳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이자리에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지리산지구 전적비에 새겨진 글을 옮겨 본다.
일찌기 공산비적의 무리가 삼남의 지붕을 어지럽히던 날,
국군과 전투경찰이 멸공의 횃불을 여기에 밝혀
적도를 토벌하였고,
이고장 이름없는 애국향민이
신명을 함께 바쳐 향토를 지켰으니
여기는 대유격전의 효시가 된 곳이요
향토수호의 의지가 뭉쳐 빛난 곳이다.
그날의 증인으로 이돌을 세우니
세월은 멀어지되 세워진 얼을 새로우리라.
임영식기자 rokmc1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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