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항동
죽항동은 남원의 만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죽우리(竹隅里), 상항리(上巷里) 일부를 병합하여 죽우, 상항에서 따 죽항리라 하여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리가 동으로 바뀌었다. 처음 남원 양씨(南原梁氏)가 1300년대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남원성이 존재할 당시까지는 동문안과 남문안의 이른바 성안(城內)마을이며 주택을 제외하고는 거리마다 대나무가 우거져 「대나무골목」이라 부르던 곳이다. 특히 죽항리 167번지 일대는 대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대나무골목의 이름이 지금의 죽항리로 변한 것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시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부터 이다.
서부 죽항동
상가 지대로 도로변에 임하여 번화한 곳이므로 도로는 골목길까지 포장이 잘 되어있고 주민들의 90%는 봉급생활자가 차지해 있으므로 생활문화 수준이 상위에 속하고 있다.동부 죽항동
옛날의 성밖의 마을에 해당되며 요천강변에는 기우제를 올렸던 숲정이와 춘향전에 오르내리던 동림숲(장림숲)이 있던 곳으로 길가에는 많은 대나무가 우거져 대나무골목이라 불렀다. 지금 중앙초등학교부근에는 옻나무를 많이 가꾸어 옻밭정이라고도 불린 이곳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한산한 주택지로 조용하였으나 시외버스터미널이 동문밖에 설치된 이래 급속도로 발달하여 교통의 심장부가 됨에 따라 동문네거리를 중심으로 동부시장이 생기게 되었으며 옛날 한적한 선원사 골목까지 상가가 밀집하고 있다. 마을 동쪽은 요천강이 흐르고 제방에 심어있는 아름드리 고목나무는 여름한철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또한 강변에는 요천강의 정서를 담은 쌈지공원이 있다.1. 지리적 위치
시외버스 터미널부근 숙박업소가 밀집되어 있는데다 죽항아파트가 있어 시내 중심동이지만 상가지역보다는 일반주택의 비중이 큰 주거지역이다.2. 동 세(면적)
총면적은 0.31㎢로 죽항동 면적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비율은 밭이 0.01㎢,로 총면적의 3%, 논이 0.01㎢로 총면적의 3%를 차지하고 있고 기타 대지가 0.179㎢로 총 면적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가구는 1,1702호로 죽항동 전체의 54%이고 인구는 3,257명으로 남자 1,612명, 여자 1,645명(죽항동 전체의 56%)이다.3. 주요산업 및 토산물
산업구조는 농업이 0.05%이고 광공업이 2% 서비스업이 39%로 대부분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이다.
쌍교동
쌍교동은 본래 남원의 장흥면(長興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하삽리(下揷里), 상삽리(上揷里), 천거리(川渠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쌍교리라 하고, 남북교리(南北敎里), 금리(錦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천거리라 하였다가 1931년 남원읍에 편입하였다.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리가 쌍교동, 천거동으로 바뀌었다. 쌍교동과 천거동의 2개 법정동을 병합하여 쌍교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98년 9월 22일 인구과소동 통폐합으로 쌍교동은 죽항동으로 천거동은 금동으로 편입되었다.
1. 지리적 위치
남원시(南原市)에서 20㎞지점인 동경 127도 23분, 북위 35도 36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남으로 죽항, 금동, 노암동과 접하고 있는 남원의 심장부이다.2. 동 세(면적)
총면적은 0.20㎢로 남원시 전체 면적의 0.03%를 점하고 시내 동 중에서 면적이 가장 적은 동에 속하며 대지가 0.10㏊로 총면적의 50%, 기타가 50%이다. 현재 가구는 482호로 죽항동 전체의 22%이고 인구는 1,184명이며, 남자 572명 여자612명으로 죽항동 전체의 21%이다.3. 지 형
동(洞) 중심부에 광한루원(사적 303호)이 있고, 요천 수상유원지가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4. 주요산업 및 토산물
산업구조는 도시 동으로써 서비스업인 3차산업이 88.9%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농림업은 4.2%, 광공업은 6.9%밖에 되지 않는다. 주 산업인 서비스업은 관광지 주변의 식품접객업소와 일반 도·소매업소가 대부분이다.5. 교 통
동지역을 통과하는 시가지 도로(방장로, 광통로, 강변로, 춘향로, 금정로 등)가 발달되어 있어 교통이 원활하다.6. 관광·문화·체육
주요 문화재는 광한루원(사적 303호)과 광한루(보물 281호)가 있다. 광한루는 1419년대에 조영된 누정으로 태종이 양영대군을 폐위하려 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퇴관하여 남원으로 내려온 황희가 세종원년에 광통루를 세웠으며,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정여공이 증수하고 세종 26년에 정인지가 광통루를 광한루라 고쳐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관광지는 요천 수상유원지가 있다.하정동
하정동은 본래 남원의 만덕면(萬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하항리(下巷里)일부와 고정리(古井리)를 병합하여 하정리라하고 남원읍에 편입하였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리가 동으로 바뀌었다. 남원성이 건재할 때까지 성안에 위치한 부사청인 동헌(구군청)이 있었던 곳으로 남원의 심장부다. 구 남원시 의회 앞에는 동헌의 문루가 서 있었는데 1931년 향교로 이축하였는데 지금의 남원향교 진강루(振綱樓)이다. 백제시대 남원은 고룡군(古龍郡)이라 하였고 통일 신라 때에는 남방지역의 행정치소인 남원소경(南原小景)을 두었고 고려 때부터는 남원부가 되었던 역사의 변천은 하정동이 그때그때 정치, 교육, 행정의 중추부요 수뇌부였음을 말해주며 동헌에 근무하던 육방 관속인 아전(衙前)들이 보통 동헌문전에 살았으므로 하정리는 옛날 아전들 육방관속의 주택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을 하정리라 일컫게 된 것은 동헌 전용의 샘 밑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샘 정(井)자와 아래 하(下)자를 넣어 하정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동헌 뒤에는 연꽃을 가득심은 연못이 있었는데 1940년경 방죽을 메우고 군 부속청사가 들어섰다. 1974년 관내에 용남시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경제상품의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 무렵 우시장도 관내로 옮겼는데 남원 우시장은 수원 다음가는 한국 2대 우시장중의 하나로 장날 이곳에서 거래되는 소는 무려 1000여두를 넘었다.(현재는 조산동으로 이전하였다)
1. 지리적 위치
지금 용성로와 의총로라 불리는 도로는 남원성 남벽과 서벽을 헐고 도로를 낸 곳으로 성로라 불리며 그 안에 용남시장이 들어섰고 용남시장을 주축으로 각종 상가 및 은행, 공공기관단체 등이 밀집된 도시 중심동이다.2. 동 세(면적)
총면적은 0.17㎢로 죽항동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비율은 밭이 0.001㎢로 총 면적의 0.5%를 차지하고 있고 기타 대지가 0.118㎢로 총면적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가구는 522호로 죽항동 전체의 24%이고 인구는 1,373명으로 남자 668명, 여자 705명(죽항동 전체의 24%)이다.3. 주요산업 및 토산물
동(洞) 중심부에 광한루원(사적 303호)이 있고, 요천 수상유원지가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Copyright ⓒ 남원넷.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