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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2014.09.13 10:52

대강면의 역사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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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jpg

 

고리봉에 쌍무지개

 

역사

 

고려시대 이후 남원부에서 관할하는 48방 중 견소곡방(見所谷坊), 초랑방(草郞坊), 생조벌방(生鳥伐坊) 지역이었다. 고려시대에 수군을 중히 여겨 전국에 진(津)을 두고 나루터를 설치하였는데, 이때부터 방산(芳山) 나루터와 금탄(金灘)나루터가 있었다 한다.용성지 고적편에 "부의 서쪽 60리에 보유향(寶有鄕)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우리 면지역의 옛 지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14년에 3개방을 합쳐 남원군 대강면(帶江面)이라 하였으며, 면사무소를 사석리 502번지에 두었다. 직할하천인 섬진강이 인근 군 읍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면 하부지역을 혁띠처럼 흐르고 있어, 띠 대(帶) · 물 강(江)자를 쓴 “대강면”이라 하였다고 전한다.13개 법정리에 22개 행정리와 26개 자연부락이 있었으나, 1981년 7월1일 사촌리를 사촌1구 · 2구로, 방동리를 편동 · 양동으로 나눔으로써 지금은 13개 법정리 · 24개 행정리로 되어있다.
1925년 5월1일 대강초등학교(사석), 1946년에는 수홍초등학교(후에 이전하여 문덕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1955년 4월27일에는 대강중학교(방동), 1958년 8월25일에 대강초등학교 광덕분교가 문을 열었다.
1961년에는 대강우체국, 1971년에는 대강농업협동조합이 생겼다.
1971년 5월15일부터 수촌마을 앞에 수홍출장소를 두어(남원군조례 제149호) 풍산 · 수홍 · 옥택 · 평촌 · 입암 등 5개 법정리 9개 마을의 행정을 관할하였다.
1978년에는 문창초등학교(수홍리 도곡)가 생겼다.수홍출장소는 소재지를 잇는 지방도730호선 개설에 따라 1985년 7월1일 폐지(남원군조례 제849호)되었다.
1987년 1월1일 입암리 일부를 순창군 유등면(책암리)에 편입하였다.(대통령령 제12007호)
1991년 12월24일 ‘사석리 728번지’에 현재의 면청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95년 1월1일 도농통합시 발족으로 ‘남원시 대강면’이 되었다.
1995년 대강보건지소 부설 물리치료실이 생겼다. 농촌인구 감소와 취학아동수의 격감으로 1991년에는 문창초등학교, 1995년에는 문덕초등 학교, 1998년에는 광덕초등학교가 차례로 폐교되어 대강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

  

전설

순자강

금지와 대강 경계에서 방동리까지의 섬진강 상류를 옛날에는 순강(순江) 또는 순자강(순子江)이라고 불렀다. 방뜰의 풍부한 곡식과 강에서 우글거리는 물고기 등, 무한량의 먹이에다 강변의 무성한 수풀은 철새에게는 천혜의 낙원이었다. 지금도 사시사철 갖가지 철새들이 찾아와 이 강변에 서식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을에 떼를 지어 몰려와 성시를 이루는 것이 메추리였다. 그래서 메추리가 많은 강이라 하여 순자강(순子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옛날에 송동(두동리)에 살던 김취용(金就容, 전주판관을 지냈다고 한다)이란 사람이 병으로 몸져눕자, 아들 김정설(金廷卨)은 지성을 다하였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한여름의 어느 날, 아버지가 메추리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가을철이 되어야 찾아오는 메추리를 무더운 여름철에 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김정설은 천지신명에게 기원하고는, 메추리가 많이 서식한다는 순강을 찾았다. 두레기(대강 입구)의 강가를 더듬어 올라가는데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메추리 한 쌍이 하늘에서 나타나 강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김정설은 반갑게 그 메추리를 건져다 부친에게 공양하였더니 병환이 말끔히 완쾌되었다. 나라에서는 그의 효성을 전해지자 정려를 내리고, 메추리가 떨어진 강이니 메추리순 , 아들 子를 써서 순자강(순子江)이라고 했다고 한다.

 

호성암

노봉마을의 뒷산 중턱에 호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은 남북이 대치되는 1970년초반 무장공비 은신처가 된다하여 철거되어 터만 있고, 터 옆에 커다란 석불과 샘이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도승이 이곳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도승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이었다. 도승은 깜짝 놀라며 호랑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이 나를 해치려 하는가?"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도승은 호랑이가 자기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목구멍을 살펴 보았다.
그때 호랑이의 목구멍에 짐승뼈가 박혀 있었다. 도승은, “너 이 뼈를 빼달라는 것이구나" 하고 물으니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도승은 호랑이의 목구멍에 있는 뼈를 빼주었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비호같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튿날 밤이었다. 어제 만난 호랑이가 도승 앞에 나타나 큰 산돼지를 물고 있다가 도승 앞에다 놓고 마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산돼지 한 마리를 바치오니 걷우어 주소서''라고 하듯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승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호랑이도 미안하다는 듯이 또 머리를 숙이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호랑이는 가다가 혼자 생각하였다.
도승께서 거절하셨는데 가장 좋아하시는게 무엇일까, 그러다가 ‘옳지 도승님은 혼자 사시니까 여자를 잡아다드려야겠구나''하고 생각하며 며칠이 지났다.
다시 호랑이가 도승 앞에 나타나 무언가를 앞에다 놓았다. 도승은 살펴보니 이것은 여자가 아닌가? 이 여자는 기절해 있었다.
이에 도승은 우선 기절한 여자를 살려야겠다는 심정에서 여자를 안고 법당으로 들어가 여자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염불을 하였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서 여자는 소생하게 되었다. 도승은 여자를 돌려 보낼려고 호랑이에게 잡혀온 내력을 물었다.
그랬더니 여자는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영남 어느 고을에서 밤에 몰래 잡혀왔는데 처음에는 몰랐으나 조금 지나서야 호랑이에게 잡혀 온 것을 알았다고 한다. 처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은 처녀를 앞세우고 집을 향해 떠났다.그 무렵 처녀집에서는 자기 외동딸이 없어졌으니 온 마을이 난리였으나 갑자기 어느 스님과 딸이 나타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들은 도승의 말을 듣고나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부모는 도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재산을 처분하여 스님에게 주니 도승은, “이것은 호랑이를 만나서 생긴 인연이니 그곳에 절을 세워 호성암이라고 부를까 하오" 그리하여 이룩된 절이 바로 호성암이다.

삼선암

수촌마을 입구에는 5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옛날 사포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도취되어 쉬면서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사포정의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수촌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은 사포라는 이름의 중이 있었는데 그가 이 마을에 도착하여 자기가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수촌마을 어귀에 꽂고 가버렸다. 후에 이 지팡이가 자라 이 마을 앞에 정자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개구리봉과 왕산바위

수동마을 동쪽 구 철도 건넌목 부근에 있는 봉우리가 개구리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기에 있는 바위를 왕산바위라고 부르는데 생김새가 구슬모양으로 여의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왕산바위가 개구리봉 정상에 있었으나 수동마을 사람들이 권세를 부리고 때로는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므로 이곳에 사는 산신이 노하여 혼내 주기로 마음을 먹고 정상의 바위를 굴러 떨어지게 하자 마침 지나가던 처자가 이 장면을 보고 “저기 바위가 걸어오네"라고 말하자 그 바위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고 하며, 그후 마을사람들 성품이 온순해져 서로 아끼고 도와가며 잘 지냈다고 한다. 이 왕산바위 높이는 4m가 넘는다.

계동마을 전설

옛날 백제의 장군이 전쟁 중에 자기 휘하의 병력은 5만명이고 신라군은 25만명인데 마을 뒤 풍악산에 잠입하였으나 승산이 없음을 고심하던 차 하룻 밤에는 꿈을 꾸는데 장군이 큰 고목나무 옆을 지나가는데 이름 모를 백발도사가 나타나 적정을 자세히 일러주고 지세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이튿날 비법대로 적을 완전 섬멸하였다
.그후 장군은 꿈에 본 고목나무 밑에 집을 짓고 심신을 수양하다가 99세의 장수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김씨부인 효열문

인화마을의 진사 이운규의 처인 김씨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김씨부인은 순조때에 시어머니가 위독하자 왼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고 위독한 시어머니를 구환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위독하자 이제는 오른쪽 손을 절단하여 수혈하고 수일 동안 간호하여 남편을 정성으로 구환하니 하늘이 감동하사 남편을 소생시켰다. 효열이 조정에 알려지자 1865년 고종 2년에 명정을 수여 받았다.

뱀 골

풍수설에 의하면 뱀 4마리의 머리, 즉 사사두(四巳頭)의 뱀머리의 형국 즉 사두혈(巳頭穴)이 있는 곳이라하여 일찍이 뱀골이라 불러 왔으며 사투리로 비암골 또는 뱀골이라 칭하는데 지금도 주민들 간에는 그대로 부르고 있는데 한문으로 옮길 때 인화리라 하였다고 한다.

하늘 감동

화정마을 한영희씨의 8대 조부께서는 부모님에게 극진한 효행을 하던중 어머니께서 사망, 마을옆 금석동에 장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상여가 가는데 전날 비가 많이 내려 냇물이 많았으나 갑자기 흐르는 물이 멈추어서 상여가 가는데 지장없이 무사히 장지까지 갔다는 전설이 있다.

강태망 효자각

화정마을에 살고 있는 강용수의 8대조 할아버지께서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히하여 오던중 모친이 사망하여 그의 묘를 지금의 율치 뒷산에 산소를 만들고 날마다 묘소에 문안을 드리는데 극진한 효성을 하늘이 잊지않고 있는 듯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절을 하며 등에 타라는 고개짓을하여 호랑이 등에 탓더니 묘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가문의 전설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손들이 효자비를 세워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박석치(대율)

원래 춘향은 천하에 박색인 관기였는데 30살이 넘도록 통혼조차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춘향이 요천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가 이도령을 보게 되었다. 그날부터 춘향은 상사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월매는 혼자 계책을 세워서 이도령을 꾀어 춘향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맺게 하였다.
그날 이도령이 방에서 나오자 월매는 정표를 요구하여 비단을 정표로 받았다. 그후 이도령은 상경하여 소식이 없자 춘향은 그 수건으로 목메어 죽었다. 불쌍히 여긴 남원읍민들이 이도령이 가던 일심고개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는데 요절해서 죽었기 때문에 자갈이 많은 곳에다 묻어 주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박석고개라고 한다.

대율마을

이 마을은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 마을 어귀에 큰 논이 있었다하여 ‘한배미''라 하였는데 일설로는 큰 밤나무가 있어 ‘한밤''이 사투리로 ‘한배미''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율''이라 칭하고 ‘밤티재''에 율명당이 있어 이로인해 대율이라 칭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두실

덕평마을에 사두실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일명 뱀머리바위라고도 한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등성이를 뱀이라고 하고 이 마을 끝에 있는 바위를 뱀머리라고 한다. 전설에 이 뱀이 다른 마을의 뭔가를 잡아먹기 위해 머리를 들었다가 끊어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자나무

오현마을 앞에 수백년된 정자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나뭇잎이 무성하면 풍년이고, 잎이 드문드문 자라면 비가 적게와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산지당 샘

오현마을 동쪽 계룡산의 산 중턱에 조그만한 우물이 있는데 물이 나올만한 위치가 아닌데도 샘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곳에서 촛불을 켜고 신령님께 지성껏 정성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산지당 샘''이라고 부른다.

풍촌 샘

이 마을에는 풍촌샘이 있는데 이것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이 마을의 지하수 물줄기는 인근 계룡산에서 땅속 깊이 흘러온 석간수 물줄기가 있어 암반을 뚫고 우물을 파니 그 깊이가 지하 50척이나 되는 우물이었다. 그런데 이 우물가에는 우물의 정기를 받은 향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기를 받아 대대로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스님이 시주하러 가니까 문전박대 하였다. 이에 스님은 “저 우물 한 자만 더 깊이 파면 더 번창할수 있는데" 하며 지나갔다. 이 말을 들은 주민들은 우물을 파기 시작하여 한 자를 깊이 파니 난데없이 학 두 마리가 눈부시게 날아 올라 한 마리는 관촌으로 또 한 마리는 신촌으로 날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신촌에는 천석군이 나왔고, 관촌에는 만석군이 나왔다고 한다.

형제 소나무

관촌마을 뒷산에 형제 소나무가 있는데 왼쪽 소나무는 형으로 이 소나무에 달이 뜨면 풍년이고, 동생나무인 오른쪽 소나무에 달이 뜨면 흉년이라는 전설이 내려 온다. 그리고 중생바위라하여 폭포가 흘러서 물이 고여 있는 바위가 있다.

오리정

이곳에는 춘향과 얽힌 전설의 유물이 많은 곳이다. 노송이 우거진 오월이면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할 때 눈물을 흘렸던 ‘눈물방죽''과 ‘오리정'' 그리고 춘향과 이도령이 단장의 이별을 사연과 함께 못내 서러워 발버둥쳐 신발자국이 남았다는 200여평의 ‘버선밭''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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