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유영대 교수는
‘유자광 전승(傳承)과 민중적 상상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유자광은 얼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와 질투, 반대에 부닥치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한편, 유자광은 경주부윤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로 세종 21년(1439)년 남원 고죽동에서 태어났다.
유자광은 뛰어난 재주로 자신의 신분에 당당히 맞서 세조·예조·성종·연산군·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된 유자광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그의 고향 남원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남원시 애향운동본부와 한국예총 남원지회 주관으로 10일 남원춘향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유자광을 재조명한다’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체육대학교 심승구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 중에 한사람인 유자광은 객관적인 사실에 의해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간신은 시대가 만드는 것으로, 우리가 유자광을 다시 봐야할 이유”라고 말했다.
▲ 지난 10일 남원춘향예술회관에서 ‘유자광을 재조명한다’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 교수는 ‘유자광의 생애와 정치활동’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16세기 이후 조선 정국을 주도한 뒤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사림의 정치이념은 유자광을 도덕적 죄인으로 낙인찍어 역사의 감옥에 수감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또 “유자광에 대한 평가를 신빙성 없이 역사적 상상력에 의존하거나 섣부른 해석을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갑자사화 뒤 김종직을 부관참시 해 두 번 죽였다는 이유로 유자광을 간신으로 평가하는데, 사실 김종직과 유자광은 아주 친한 벗이었음을 증명하는 서신이 발굴됐다”고 확인했다.
심 교수는 또 “유자광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나 평가가 상당히 부정적인데 반해 민간에서 전승되는 설화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에 걸쳐 임금을 모셨다. 그러나 연산군시대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되고 있다.
남원시와 애향운동본부는 유자광의 누명을 벗겨내고 역사의 인물로 재조명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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