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도예문화 예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온 심수관도예전시관이 어느덧 개관 12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2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남원심수관도예전시관을 기념한 최초 시도인 심포지엄은 ‘심수관, 남원에서 시작된 430여 년의 여정’이란 주제로 남원의 도자 역사와 문화 연구와 12대 심수관 도자기에 담긴 의미를 통해 심수관과 남원의 도자기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담론의 장이 펼쳐졌다.
심포지엄 대표 학술연구자는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방병선은 오랜기간 일본 피랍 도공에 대한 연구와 한국미술사학회장 및 도자사 전문가로, ‘임란 전후 피랍 사기장에 관한 제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방 교수 연구는 조선 사기장들의 납치 여부(납치된 것인지, 자진 혹은 강제로 이주한 것인지) 고향과 정착 후의 생활, 도자 제작 기술 전파, 작품 양식에 관련하여 전개하였고, 연구의 결론은 “조선 초기부터 조선 도자기, 특히 다완에 대한 기호와 욕망이 상당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솜씨 좋은 조선 공인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서 등을 통해 유추하건데, 조선 도공 납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조선 도공들이 도착한 규슈 일대 현에서는 이들을 자신들의 산업 경쟁력을 높여 줄 구세주로 생각하고 격리, 관리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해 일본 내 장인 관리 체제와 도자 기호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고 발표했다.
조선 초기 남원지역의 자기 생산과 면모와 특징을 발표한 명지대 교수 박정민은 과거 남원은 유구한 역사를 지는 고장으로 조선도자사에 있어 관요가 성립되기 이전 백자를 매년 공납했던 지역이라 평가했다.
그 이유는 백자는 세종(1418-1450) 1430년 왕실은 일부 어기(御器)와 제기(祭器)를 사용하였고, 조선 전기문집 ‘점필재집’에 1440년대 남원, 고령, 경기도 광주가 백자를 매년 공납 기록에서 조선 초기 남원의 자기 제작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남원시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언급하기를 “왕정동 가마터를 비롯한 남원시 일대에 자리하는 조선시대 도자기 가마터들에 대한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선시대 백자 문화의 상장과정에서 남원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다 진일보하겠다. 또한 도요지 주변에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유적이 지닌 고유성이나 역사성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보고된 도요지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에 대한 보호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라고 말했다.
메이지시대 심수관요의 도자 기술혁신이 작품에 미친 영향과 후대 계승의 의미를 연구한 고려대 교수 김윤정은 지난 7월 심수관요를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를 직접 받는 등 연구에 노력하여 심수관요가 지닌 학문적 성과를 내놓았다.
남원시 소장품 금수동방삭 입상(12대 심수관, 1880~1900년경)은 히네리모노 기법의 장식물로 표정과 수염 등을 정밀하게 조각하였으며, 제작법은 석고틀을 이용한 주입 성형으로 얼굴과 신체를 부분을 따로 제작하여 부착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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