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봄이면 살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과 움트는 나무들의 새싹을 보며 희망을 생각하게 되고, 여름이면 거친 폭포 소리와 함께 짙은 녹음 아래 가만히 눈을 감으며 휴식을 취하며, 겨울이면 하얗게 쌓인 눈꽃 아래 바스스 떨고 있는 앙상한 가지를 보며 인내를 배우게 된다.
이렇듯 사시사철 지리산이 좋지 않을 때가 언제일까 싶지만, 그래도 불어로 지리산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우리말로‘참 좋은 시절’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역시 가을의 지리산이 아닐까 ?
춘향묘가 위치하고 있는 육모정에서 정령치 방향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구룡계곡은 아홉 용이 노닐다 승천했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 질만큼 구불구불 아슬아슬하게 연결되며 절경을 연출한다.
가을 구룡 계곡의 백미는 붉게 물든 단풍이 너무나도 투명한 계곡물과 만나 연출하는 풍경이다. 마치 엄마 품에서 떠나 엉엉 울다 보니 온 몸이 빨개져 손끝까지 빨갛게 물든 아기의 손바닥을 보는듯한 지리산 가을단풍은 그 바로 아래서 햇빛을 올려다 볼 때 더욱 빨갛게 변하며 수줍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가까이서 봐도 아름답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단풍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천상의 선녀가 노니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착각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늦가을 찬바람도 구룡계곡의 멋진 경치를 구경하며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을 식혀주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도 이제는 그 소리마저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지리산의 풍경에 매혹될 무렵이 되면 이제 구룡계곡의 화룡점정인 구룡폭포의 웅장함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 장마철의 장대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차분한 느낌과 함께 붉은 빛깔 단풍과 어우러져 진중한 모습의 자태를 뽐내는 구룡폭포를 보고 있자면, 단아한 한 쌍의 남녀 모습을 그려보게도 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저 지구의 변덕 때문인지 갈수록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빨라지는 느낌이 든다.
늦가을이란 말을 쓰기가 무섭게 초겨울이란 말이 더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지리산 구룡계곡에는 일 년 중 오직 이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멋진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리산의 가장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 아직은 늦지 않았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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