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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인의 영혼이 잠든 곳 지리산 만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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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노고단에서 바래봉까지 지리산의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지리산 서북능이라 한다. 이 서북능의 최고봉이 해발1,438m의 만복대 이다.  만복대는 이름 그대로 넉넉한 모습을 품고 있다. 동쪽으로는 달궁계곡 건너의 천왕봉을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노고단을 바라본다. 그사이 웅장하게 우뚝 선 반야봉을 마주하는데 온화하며 우직한 거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만복대 북동쪽과 동남쪽 사면은 완만하면서 넓은 여인의 치마폭 같은 구릉지대이다. 한눈에 보아도 물과 식생이 풍요로워 보이는 넉넉한 지형이다. 아직 확인은 못하였으나 만복대 주변으로는 반드시 사람 삶의 흔적이 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가을이면 만복대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중심으로 억새가 흐드러 진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억새꽃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내가 서있는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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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반야봉을 마주 바라보는 곳에 선 필자.


북쪽과 서쪽으로는 남원 운봉과 구례 산동을 내려다 본다.  산동은 지리산 온천지역으로도 유명하고 이른 봄이면 지리산 산수유꽃 축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지리산의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과 자연을 아끼려는 사람들은 무식한 자본가들의 난개발 이라고 할 것이고, 일 년에 한두 번 지리산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휴식의 장소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덜 중요하다 말하기 힘들다. 이를 적절히 감안한 지리산다운 개발과 운용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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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지리산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능선길 아래 치마폭처럼 넓은 구릉지대


만복대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월계재와 다름재를 지나 밤재로 이어진다. 산동 월계에서 북쪽으로 월계재를 넘으면 행정구역상으론 남원시 주천면이지만 실제로는 운봉고원의 남단이다. 이곳은 어마어마한 철기유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최근 발굴을 통해 조선시대까지의 유물들을 확인했는데 운봉고원의 북쪽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철기유물로 보아 지리산에서의 제철역사는 가야시대 때까지로 추정한다. 지리산에서 생산된 우수한 품질의 철은 철괴 형태로 만들어져 화폐의 기능까지도 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운봉고원의 사람들은 부와 힘을 갖게 되었다. 초대형 야철지가 있는 이곳이 만복대 기슭이며 우리나라 철기문화의 메카로 보고 있다. 만복대라는 지명을 왜 갖게 되었는지 충분히 유추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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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만복대 정상에서 만난 경인일보 김종화 기자의 취재모습


만복대 정상에서 동쪽 산길로 살짝 내려서면 달궁계곡을 내려다보며 반야봉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조그마한 돌무더기와 나무말뚝 하나가 서있었다. 만복대를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던 어느 젊은 여인의 영혼이 잠든 곳이다. 삶과 사랑 사이에서 너무도 힘들어 했던 그녀는 내 육신을 만복대에 뿌려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삶을 포기했다. 아프고 힘든 삶을 만복대에서 위안받고 헤쳐나가 보려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 가여운 여인의 고뇌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지금은 돌무더기와 나무말뚝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늦가을 억새꽃이 한창일 때면 만복대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들 몇몇이 이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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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면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산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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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복대 가는 길 바위틈에서 만난 이름 모를 예쁜 식물. 


만복대는 기암괴석으로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산봉우리는 아니지만 포근한 모습이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혹여 마음이 울적하고 삶이 고단하다면 꼭 만복대를 찾아보기 바란다. 만복대는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리산 봉우리중 하나이다. 737번 지방도로를 따라와 정령치 휴게소에서 부터 시작하는 만복대 등산길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다만 동절기는 노면이 동결되는 이유로 도로를 폐쇄한다. 일상의 고단함을 지리산 만복대는 온전히 안아줄 것이다. 지리산을 노래하는 이원규 시인의 한 시구절처럼 행여 견딜만하면 오지 마시라.  <글/사진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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