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백두대간이 만나는 곳 고리봉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 고리봉에 올라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산줄기는 1,400km를 흘러내려 지리산 천왕봉에서 멈춘다. 그중 산꾼들이 종주할 수 있는 남한의 최북단 진부령에서 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약670km인데 처음 지리산을 만나는 곳이 서북능의 중간쯤에 있는 고리봉이다. 조선 영조때의 실학자 신경준이 쓴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란 고서가 1980년 고지도 연구가 이우영씨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며 박두대간이란 개념이 알려지게 된 후 백두대간은 민족의 정기를 잇는 종주길로 수많은 산꾼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고리봉에서 지리산 능선을 올라탄 백두대간은 정령치, 만복대, 성삼재, 노고단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천왕봉까지 이어진다. 고리봉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바래봉을 왼쪽으로 휘돌아 운봉뜰을 감싸고 이어져 덕유산을 지나는 장대한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동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에서 멈추는 대간의 정점을 마주하게 된다. 왠지 고리봉에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 운봉고원을 좌측으로 돌아 덕유산에 도착한 백두대간이 섬처럼 보인다.
고리봉에서 동쪽으로는 달궁계곡을 내려다보며 반야봉을 마주한다. 고리봉 바로 밑으로는 신비스런 평원에 잣나무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개령암지와 고려시대 조성된 거로 추정되는 마애불상군이 숨어있는 곳이다. 특히 마애불상군 앞으로는 넓은 평원이 발달해 있는데 이곳에 보기드믄 고산습지가 있어 생태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느낌은 가능만 하다면 이런 곳에 꼭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풍부한 물과 북서쪽으론 폭풍한설을 막아주는 고리봉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장쾌하게 펼쳐지는 지리산 주능선을 보면 풍수지리적 지식이 없는 문외한일지라도 명당일거란 느낌이 와 닿을 것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린 보물 제1123호 12구의 마애불상군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견고하지 않은 자연암석에 조각된 작품이라서 자연풍화 작용에 의해 불상조각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급히 보조석축을 쌓아 유실을 방지하는 노력을 기하고는 있지만 유구한 세월 앞에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고리봉에서 반야봉을 바라보는 겨울 풍경은 평원의 잣나무 숲과 웅장한 반야봉이 잘 어울린 매력적인 모습이어서 눈이라도 흠뻑 쌓인다면 꼭 필름에 담고 싶은 사진작업 대상이기도 하다.
▲ 고리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반야봉
▲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보존을 위한 석축작업 모습
개령암지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정령치 휴계소이다. 고개마루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매점이 들어서 있다. 운봉에서 737지방도를 타고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며 산상의 분위기를 느끼고 다시 내려서면 달궁계곡과 뱀사골계곡을 만난다. 마한이 주변세력에 쫒겨 달궁에 들어와 피난도성을 구축하고 정씨성을 가진 장수에게 성을 쌓고 이곳을 지키게 해서 얻은 이름이 정령치인데 주변에 신기할 정도로 평지가 넓고 잣나무 숲이 잘 발달해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초 국가에서 사탕수수 농원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 개간을 했고 경작에 실패하자 잣나무를 심었다 한다. 오랜세월 수목이 자라 훼손된 자연이 그나마 복원되어 다행스럽다.
▲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의 풍경
요즘 또다시 지리산에 케이블카와 산악철도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지리산권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곳 정령치에 산악철도를 개설하겠다는 계획인데 좀 어수룩한 기획인 듯하다. 유럽의 알프스와 지리산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엄청난 투자와 자연훼손을 감수하고 얻을 수 있는 경제유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차라리 있는 길이나 잘 관리해 겨울에도 지리산을 찾는 이들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에 눈 오면 위험하다고 길을 막아놓는 곳은 여기서 처음 본다.
그래도 아무말도 못하는 순박한 주민들도 여기서 처음 본다. 정령치가 기존의 기반시설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추가적인 개발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고 개설된 도로에 빈번히 발생하는 로드킬과 도로변 깊은 배수로로 단절되는 생태계에 보완책을 열심히 만들어주는 게 국립공원으로써의 가치를 유지하는데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산을 파헤칠 예산으로 지리산 민속마을이나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램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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