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살며 지리산을 여행한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지리산에 들어와 삶의 둥지를 튼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 산속에 살림집을 짓고 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지리산을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깊이있는 사진작업을 위해서도 폭넓은 지리산에 대한 이해도를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몇해전 마침 모출판사에서 지리산 여행책을 출간해 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지리산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는 기대감에서 였다. 꼬박 2년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글도 썼다. 처음 계약한 출판사와는 도중에 곤란한 사정이 생겨 출간을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다른 출판사를 만나 지난해 여름 “지리산 낭만여행”이란 제목으로 지리산 여행책을 출간했다. 그간 지리산에서 사진작업을 하며 산에 대한 이해도는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원고를 쓰며 지리산 문화를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많이 넓어진 느낌이다. 지리산과 지리산을 품고 있는 5개 시, 군, 그 속의 역사와 문화들을 독자들에게 폭넓게 소개하고 싶었다.
▲ 지리산을 여행의 관점으로 소개한 여행서적 “지리산 낭만여행”- 2015년 책나무 출판사
지리산은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지만 화려하고 극적인 아름다움을 지리산에서 찾는다면 그건 적절치 않다. 차분하고 여유있게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이 지리산의 특징이며, 생각하며 돌아보아야 그 감동이 커지는 것이 지리산 여행의 특징이다.
몇해 전부터 부모님이 많은 시간을 지리산에서 함께 지내고 계신다. 황소처럼 강건하셨던 아버지는 연세가 들어가시며 무릎이 나빠져 목발이 없이는 거동을 못하신다. 맘먹고 온가족의 지리산여행을 제안했다. 밖에 나가는 걸 썩 좋아하시지 않는 성격이란 생각과 여유롭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자주 나들이를 하지 못했는데 식구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자동차 핸들을 잡는 느낌이 종일 가벼웠다. 지리산 실상사 인근에 있는 집을 출발해 지리산을 한바퀴 도는 일정이다. 중간에 마을축제 한곳을 들르고 하동 쌍계사 인근의 지리산 야생차문화축제를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을 했다.
▲ 신록의 가로수가 터널을 이룬다
지난해 출간한 “지리산 낭만여행”에 지리산에서 드라이브 하기 좋은 코스를 소개했다.
그 대부분의 구간을 지나는 이번 여행길의 길섶에는 제법 녹음이 우거져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암자나 사찰 인근에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모습들이 보이고 논과 밭에는 농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인다. 함양 마천을 지나고 용류담을 거쳐 산청의 밤재를 넘었다. 댐 건설로 수몰 될지도 모르는 용류담 인근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쉽게 좋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도 이곳의 칭찬만은 마다하지 않으신다. 단성, 덕산, 옥종 가는 길과 갈라지는 창촌 삼거리의 한 선지국밥집에서 선짓국을 먹었다. 가난했던 시절 할머니가 어쩌다 한번 장에서 사 온 선지로 국을 끓이면 그게 그리 징그럽게 맛있었다고 어머니는 이야기 하신다. 아내도 돌아가신 친정 할머니가 부산 국제시장에서 사와 종종 끓여주었던 선짓국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사업에 실패하고 광주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대인동 시장에서 먹었던 선짓국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막걸리 한사발을 청해 선짓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신다. 그렇게 우리는 지리산 여행중 점심 한끼를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 한사발로 맛있게 해결했다.
▲ 북천마을 앞뜰에 흐드러지게 핀 꽃양귀비
자동차 네비게이션으로 하동 북천마을을 검색했다. 원래는 가을 코스모스 마을축제로 잘 알려진 곳인데 꽃양귀비 축제를 한다는 정보를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철길이 지나는 시골의 한적한 마을앞 들판이 온통 꽃양귀비로 뒤덮였다. 조그만 공연장에서는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먹거리 장터는 아주 절제된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집접 운영하는 마을축제로 보인다. 그러나 테마는 명확하다. 예쁜 꽃을 가꾸어 손님들을 청하고 잔치마당을 펼쳐 마을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어정쩡하지도 과도하지도 않다. 이렇게 가을엔 코스모스 축제를 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적절한 인원들이 찾아 즐거움을 느끼고 간다. 내가 꿈꾸고 우리 동네에서 만들고 싶은 마을축제이다. 너무도 부러웠고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아쉬운 감이 많이 들었다. 하동을 거처 쌍계사 인근 야생차문화축제장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유명 연예인의 공연안내 플랫카드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약간 생뚱맞은 조형물들과 각 다원에서 설치한 홍보 부스들이 장터 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축제장에 들어서며 느낀 첫 소감은 “공무원이 주도해 만든 작품이구나” 였다. 아닐지도 모른다. 많이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각기 자기집 차를 자랑하는 판매 부스는 많았지만 신비로운 지리산 차밭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차 문화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 하동 지리산 녹차 밭의 아름다운 풍경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화개골을 빠져 나오니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당초 성삼재를 넘을 계획이었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있어 넓은 길을 따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장시간 차를 타는 여행에서 조금은 피곤했는지 어머니 말씀이 집이 최고로 편하단다.
모두 즐거워했던 모습들이 기억 속으로 자리 잡는다. 나는 앞으로도 식구들을 차에 태우고 지리산에서의 지리산 낭만여행을 종종 떠나보련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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