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선 잘 먹고 잘 노는 게 잘 사는 길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 연초록의 어린찻잎이 너무도 아름다운 녹차 밭
연초록 나뭇잎이 아기주먹처럼 귀엽게 잎을 피우기 시작한다. 신록의 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고자 한다면 지금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연두빛에서 연초록을 넘나드는 나뭇잎들은 역광의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봄비라도 머금으면 그 생동감이 톡톡 튀는 느낌이다. 봄꽃이 지고 새싹들이 피어나는 요즘 지리산 남쪽 화개골에는 찻잎를 따는 아낙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사철 푸른 차나무 이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연초록의 새싹을 참새주둥이처럼 피어낸다. 지금 따서 덖는 차가 가장 맛이 좋다는 “우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먼저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한 곳이 지리산이라고 전해진다. 1,800년대 초의선사는 조선시대 석학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선생 들과 교분을 쌓고 지리산에서 그들과 차를 즐기는 등 ‘동다송’이란 시집을 통해 차를 즐기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 찻잎을 따는 아낙네의 바쁜 손놀림.
지리산에 살면 왠지 차를 즐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한 잔의 탄산음료 보다는 수정과 한사발로 목을 축여야 좀 더 지리산 다울거란 느낌도 떨칠 수 가 없다. 일상에서 티백의 녹차만을 가끔 접하다 지리산에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차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녹차, 발효차, 보이차, 중국의 서호용정, 철관음, 무이암, 이산차 등등....그 세계의 넓은 폭과 깊은 맛, 향들에서 심오한 매력이 느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에 공감한다.
친환경 농산물에도 관심이 많다. 직접 표고목도 세워보고 텃밭에는 상추도 심었다. 도시에서 접했던 믿을 수 없는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 보고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잘 먹기 위해서는 조금은 귀찮아도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맛과 멋을 느끼면 감동이 커짐을 알게 됐다. 지리산에 와서 먹는 즐거움을 깊이있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잘 나간다는 도시 친구들에게도 자랑한다. 나는 불량식품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고.
▲ 지리산둘레길 어느 마을 입구의 따사로운 봄 풍경
요즘은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커피 생두를 종류별로 조금씩 구입해 직접 볶아도 보고 손으로 직접 내려 본다. 쓴맛 속에 어우러진 다양한 향과 맛이 제각각의 매력을 뽐낸다. 참 재미있다.
어느 날 마을 청년들을 집에 초대했다. 이것저것 음식 준비를 거들던 후배가 재미있는 모임을 한다 고 소개 한다. 몇몇이 모여서 집집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등을 준비해 켜놓고 이야기도 하고 막걸리도 한잔씩 나누는 모임 이란다. 농담으로 그게 뭔 짓이냐고 했다. 그런데 야외캠프를 자주 경험했던 나는 그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모르는 상황에선 해괴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참으로 낭만 적인 분위기 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리산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놀이 문화를 가지고 있다. 농악대에 들어가 신바람 나는 풍물놀이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목판에 글을 세기는 서각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모닥불이 타는 막걸리 판에서 벌떡 일어나 사랑가 한 자락을 멋지게 뽑아내는 젊은 아가씨도 있다. 폼 나고 재미있게 노는 것도 한 생을 살고 가는 우리에게는 중요한 행복 요소이다. 도심의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가능하면 재미있는 놀이 하나 쯤은 배워보는 게 잘 사는 비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여러해 전 지리산을 방문해 귀촌인 들과 이야기를 나눈 박 원순 서울시장
짓궂은 마을 청년들은 귀촌인들에게 “털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겨울에 털신 신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귀촌인 이라는 뜻이다. 지리산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 중 계량한복을 즐겨 입고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어찌 보면 너무 티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골로 들어와 시골문화에 흠뻑 젖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왕 지리산에 내려 왔으면 그렇게 산골의 삶을 흠뻑 느끼고 분위기를 즐겨 볼 필요가 있다. 흙집 구들방의 따사로움과 매쾌하지만 싫지 않은 연기냄새의 매력을 흠뻑 느껴보는 것도 좋다. 어디에서 건 잘 먹고 잘 노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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