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은 장날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엔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 있다. 산 넘어 남쪽 섬진강변은 꽃소식이 한창 이지만 내가 사는 이곳 지리산 북쪽 골짜기는 외투를 벋어 던지기가 아직은 두렵다. 하지만, 마당 양지 바른 곳의 구절초 새싹들은 궁금한 게 뭐 그리 많은지 고개를 모두 내밀었다. 그래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가끔은 있는데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한가 보다. 실상사 경내의 매화도 이제는 꽃망울을 다 터뜨렸다. 완연한 봄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단속사지에 있던 “정당매” 지금은 고사해 볼 수 가 없는 매화이다.
식구들을 차에 싣고 섬진강가의 꽃을 보러 갔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기지개를 힘껏 켜보고 싶은 마음에 갑자기 결정을 하고 주섬주섬 채비를 했다. 해마다 이맘때는 내가 꼭 찾는 곳이 있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세 그루의 매화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이다. 흔히 지리 3매로도 불리기도 한다. “원정매”는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남사 예담촌에 있다. 고려 말 문신 “원정공 하즙”의 옛집에 있는 매화로 수령이 약 610년 정도 된 고거수 이다.
오랜 세월의 탓인지 본줄기는 대부분 고사되고 곁가지들이 그나마 꽃을 피운다. “정당매”는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있다. 고려말 문신 통정 강회백이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공부를 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령이 약630년은 족히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안타깝게도 2013년경 고사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볼 수 없음을 아쉬워했는데 주위에 어린 매화나무들이 그 혈통을 이어 자라주고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남명매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산천재 앞마당에 있다.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한 남명 조식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매화이다. 수령은 약 440년 정도로 추정되며 빼어난 수형과 짖은 꽃향을 자랑하고 있다.
▲산수유 꽃이 활짝 핀 마을의 돌담길
▲꽃을 찾아온 여행객들의 아름다운 발걸음
구례군 산동면은 노란 산수유 꽃이 지천이다.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 사이 남서쪽으로 자리 잡은 아늑한 마을들은 이맘때가 되면 찾아오는 인파와 노란 산수유 꽃이 뒤엉켜 야단법석 이다. 지리산온천 지구로도 잘 알려진 탓인지 어른들의 모습이 특히 눈에 많이 띈다. 구례를 지나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면 온통 매화 향이다. 하동군 화개면과 섬진강 건너편 광양시 다압면은 마을 전체가 꽃밭이다. 매화축제장 입구로는 흥겨운 장터가 펼쳐진다. 지금이 한창인 섬진강 벗 굴이 주막마다 산더미처럼 쌓인체 손님을 기다린다. 넓은 주차장 한켠에는 각설이 공연패의 흥겨운 연주가 펼쳐지기도 하고 구수한 입담으로 엿을 파는 소리가 지나치는 어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뜻도 모를 각설이 패 노래의 흥겨운 리듬에 넋을 놓고 어깨를 들썩인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의 손길을 단번에 뿌리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고 왁자지껄한 장터의 맛과 분위기를 즐긴다.
▲매화마을의 꽃이 흐드러진 풍경
▲매화가 화사한 꽃 터널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소란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축제마당이란 생각도 든다. 산수유 축제장도 그랬고 매화꽃 축제장도 그렇다. 곧 펼쳐질 쌍계사 주변의 벚꽃 축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각설이패 공연을 바라보며 엿 한 봉지를 사들고 흐믓해 하던 내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려보면 이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요즘은 많은 곳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축제가 기획된다. 흥겨움도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는 감동도 줄 수 있는 잔치마당 이라면 지리산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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