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품고 있는 또 다른 보물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1,915m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산세가 지리산이 품고 있는 큰 보물 중 하나라면 그 속의 문화유산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큰 보물 들이다. 이토록 지리산이 품고 있는 각각의 수준 높은 가치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에 삶속에 너무 가까이 있어 가치를 인정받고 알려지지 못하는 것들도 종종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산은 하천으로 경계를 나눈다. 99골짜기 지리산에서 발원한 계곡과 맑은 물들도 지리산의 한 구성원 들이다. 그들을 모아 남해 바다로 흐르는 섬진강과 지리산 서북능 고리봉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의 한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있다. 남원시 운봉에서 발원 해 인월을 지나는 구간을 “람천”이라 하고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를 거처 함양군 마천면으로 흐르는 구간을 “만수천” 이라 부른다. 만수천은 마천에서 “임천”을 만나 “경호강”으로 흐른다. 이 구간 안에 지리산의 숨은 보물이 있다.
▲인월과 산내면 경계 부근의 “섬바위”라 불리는 곳이다.
인월면 중근 마을 앞 “람천”에서 부터 함양군 휴천면의 용류담 까지 약 15km의 하천에는 수많은 세월의 침식작용으로 갈고 닦인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2차선 도로를 인접해 흐르는 하천이지만 나도 처음엔 쉽게 차에서 내려서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저 “돌들이 많은 아름다운 계곡이구나.” 하는 정도로 차창으로 만 보고 스쳐 지나치곤 했다.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뻔히 보이기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분화구처럼 느껴지는 포트홀 들이 산재해 있다.
행정구역상 남원시 산내면이 시작되는 곳의 “섬바위”를 시작으로 백장암 입구까지의 구간은 입을 다물 수 없는 신비의 절경이 이어진다. 지리산 신선들이 작업한 아름다운 돌조각들을 전시 해놓은 듯도 하고, 흐르는 물에 오랜 세월 갈고 닦인 암반과 그 위에 어우러진 수많은 포트홀들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외계조각가가 작업한 작품처럼도 느껴진다.
▲소동폭포 인근 호피무늬의 암반이 아름다운 조각 작품을 이루고 있다.
“만수천”을 만나기 전 넓은 암반과 거목들이 어우러진 곳에 멋진 정자 “퇴수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조금 지나면 뱀사골계곡에서 흘러내린 수정처럼 맑은 물을 만난다. 약 500m 정도 “만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산내면 삼화리 인데 여기서 또 하나의 신비로운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호피무늬의 암질로 이루어진 너럭바위들과 포트홀 그리고 기묘한 형상석들은 천상의 어느 아름다운 계곡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진작업을 하는 나에게는 아주 좋은 소재거리가 된다. 특히 흑백으로 하는 작업에서 아주 만족스런 결과 종종 얻기도 한다.
▲거대한 수석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다시 만수천을 따라 내려와 실상사 앞을 지나며 기암괴석들의 행렬은 함양군 마천면까지 이어진다. 포토홀들이 운집한 암반과 한국화의 화폭에서나 봄직한 바위섬들, 복숭아 같은 형상에 포토홀 하나 품고 있는 빼어난 수석등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절경들을 만나게 된다. 백무동 한신계곡에서 흘러드는 청정수가 마천에서 합수 된다. 여기부터 만수천은 임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신비로운 조각 작품들의 모습은 계속 이어져 지리산 칠선계곡 입구 금계마을 앞까지 이어진다.
▲용류담의 거대한 포트홀 수많은 세월동안 지라산이 만든 작품이다.
마천의 경계를 지나며 함양군 휴천면 소재 “용류담”을 만난다. 여기서 지리산이 만든 조각 작품들은 절정을 이룬다. 신비로운 황토빛 암반이 갈고 닦여 거대한 조형물들을 만들었고 방 크기만 한 포트홀들도 볼 수 있다. 용이 노닐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용류담”은 예로부터 농사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선비 김종직, 정여창, 김일손 등도 극찬했던 “용류담”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중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남원시 인월면 중군동마을 “람천”에서 시작해 이곳 임천 “용류담”까지 15km는 지리산이 조각한 천혜의 하천 지질공원이다. 그 규모와 이색적인 모습이 또한 경이로운 수준이다. 학계의 진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질학적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 과 동시에 관광자원으로의 개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
최근 이 지역이 소란스럽다.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지리산 댐 건설 예정지역이 이곳 “용류담” 바로 아랫부분이다. 만일 댐이 건설된다면 수많은 세월에 갈고 닦인 이 조각품들은 절반이상 깊은 물속에 수장되고 만다. 더 신중히 생각하고 소통해야 한다. 지리산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지리산이 지켜온 자연과 문화유산을 수장시키면서 까지 해야 하는 꼭 필요한 건설 이라면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 지금의 유산들은 미래세대가 주인이다. 함부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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